논평_
5일 ‘중앙일보 기자들의 다짐’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8.5)
등록 2013.08.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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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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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중앙일보 기자들이 ‘다짐의 글’을 자사 지면에 실었다.
97년 대선 당시 삼성과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씨의 대 정치권 로비 실상을 드러낸 ‘X파일’ 테이프에 대한 기자들의 ‘공식 입장’이다. 기자들은 이 글을 통해 △홍석현씨가 “삼성과 정치권의 부적절한 관계”에 개입한 데 대한 “반성” △삼성과의 관계 재점검 △ 공정보도를 위한 노력 등의 뜻을 밝혔다.
‘X파일’이 공개된 직후인 7월 25일 중앙일보는 1면에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라는 사설을 싣고 구차한 변명과 협박, 본질 흐리기로 일관해 독자의 분노를 키운바 있다. 당시의 사설에 비하면 기자들의 이번 ‘다짐’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중앙일보 기자들의 뜻을 굳이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다짐의 말’만으로는 중앙일보가 독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 기자들이 진심으로 이번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고 변화하고자 한다면 다짐의 말을 구체적 ‘실천’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첫 번째 실천은 ‘X파일’이 담고 있는 삼성과 홍석현 회장, 그리고 정치권력과 검찰 등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집단들’ 사이에서 벌어진 부정과 불법을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보도하는 일이다.
지금 중앙일보의 ‘X파일’ 관련보도는 기자들의 ‘다짐’을 무색케 할 뿐 아니라 그 진정성까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권-경-언 유착의 실상과 그에 대한 철저한 수사 촉구의 목소리를 중앙일보 지면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중앙일보는 안기부의 불법도청, 도청 테이프의 유출 및 보도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X파일’을 ‘도청’과 ‘보도의 문제’로 의제화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불법 도청된 테이프를 근거로 수사를 할 수는 없다’거나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등의 검찰 측 입장이 집중 부각됐다. 또 검찰이 재벌과 권력, 언론의 유착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부터 소환하겠다고 하는 데도 비판은커녕 검찰이 이 기자를 출국금지하고 소환 조사 할 것이라는 사실만을 전했다.
중앙일보의 이 같은 보도 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기자들의 반성과 다짐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재벌과 권력의 커넥션에 자사 사주가 한 축이 되어 국사를 농간하려 든 것이 진정 부끄럽다면 그 진상을 철저히 보도하는 것으로부터 독자들에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지금 중앙일보 기자들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자문해보기 바란다.


두 번째 실천은 ‘삼성-홍석현-중앙일보’의 특별한 관계를 실질적으로 청산하고 자본으로부터 편집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적극 나서는 일이다.
기자들은 “중앙일보는 99년 삼성과 완전히 분리”됐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중앙일보가 삼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독자와 국민 여러분의 우려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썼다. 기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삼성-홍석현-중앙일보’의 관계를 우려하는 독자의 시선이 과거 관계에 대한 편견이나 막연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중앙일보가 삼성의 황제경영, 부당승계, 노조탄압 등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비판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X파일’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도 중앙일보는 ‘삼성 감싸기’, ‘홍석현 두둔하기’로 일관함으로써 삼성-홍석현-중앙일보의 관계가 여전히 각별하다는 점을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자본으로부터의 편집권 독립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가를 드러내주었다.
‘사주로부터의 편집권 독립’은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신문개혁의 핵심이다. 그동안 중앙일보는 신문사의 소유 분산과 같은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를 언론자유의 침해인 양 호도해 왔다. 일선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주장을 언론인들 스스로가 거부하는 기이한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중앙일보 기자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중앙일보 기자, 특히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언론인의 윤리를 고민하는 젊은 기자들에게 당부한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신문의 편집 자율성을 지키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 실천해주기 바란다. <끝>


 

2005년 8월 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