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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를 왜곡으로 덮는 조선일보박근혜 정권 시절 도입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도입 당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기업의 경우는 사기업과 다르게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 부문의 업무 자체가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양적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업무가 많아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성과연봉제에 반대하자, 박근혜 정권은 ‘불리하게 노동조건을 변경할 경우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조항을 무시하면서까지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여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했습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도입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는 문재인 정권에서 폐기 대상 정책이 되었고, 마침 법원에서 노동자 동의 없는 성과연봉제가 무효라는 판결이 잇따르자 1년 만에 폐지되었습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반납한 성과급으로 2017년 11월 공공사업을 목적으로 한 ‘공공상생연대기금’을 설립했습니다.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이후 공모를 통해 기금사업을 선정하였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 지난 2018년 말입니다.
노동자가 성과급 반납해 만든 공공재단이 친문·좌파단체 지원?
그런데 조선일보는 <공공기관 성과급 반납시켜 모은 돈 505억 사회적협동조합에 6억, 한겨레신문에 2억…>(10/14, 원선우 기자 – 현재 수정된 상태)에서 “성과급이 친문·좌파 단체들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는 것으로 13일 나타났다”며, “야당에선 “국민 혈세로 친정권 단체들에만 기형적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고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또 “노동계 인사들을 합치면 17명 이사·감사진 중 최소 10명이 친 노조 인사라는 것이 야당 지적이다”라며 이사회 구성을 문제 삼는 것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어 조선일보는 공공상생연대기금 측이 국세청에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가공’한 자료를 제시하며 “해당 재단은 지난해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등에 6억원, 한겨레신문 장학사업에 2억3000만원을 썼다. 재단은 지난해 374명에게 모두 10억4000만여원을 지원했다고 신고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친문·좌파단체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기사(10/14)
조선일보 받아쓰기 하다가 오보
조선일보 기사를 보더라도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친문·좌파단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더 큰 문제는 한겨레가 2018년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장학사업을 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한겨레는 조선일보가 기사 제목으로까지 쓴 2억을 장학사업 명목으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장학사업 없는데 “장학사업에 2억” 한겨레, 조선일보에 정정보도 요청>(10/15)에서 이와 같은 설명을 하면서 “정정보도 및 사과, 인터넷 기사 삭제 등의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공공상생연대기금 측도 14일 당일 <보도자료/2019.10.14.(월)자 <조선일보> 기사 관련 설명>(10/14)를 내고 기사의 허술한 사실관계를 반박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기사는 재단 측이 공개하고 있는 <2018년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를 잘못 읽은 내용입니다.
해당 명세서를 보면, 기부금 지출 내역은 기간과 지출목적 별로 ‘대표 지급처명’만 기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지급 목적은 ‘목적사업비(홍보사업 외) 및 운영비’로 되어 있습니다. 재단 직원의 인건비 등의 운영비가 포함된 지출이라는 것입니다. 재단 측 반박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친문, 좌파단체에 줬다고 주장하는 10억 중 5억은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과의 협력사업 일환으로 42명의 청년 공익활동가에게 빌려 준 저리대출 채권이고, 조선일보가 한겨레에 줬다고 주장한 2억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및 저임금 노동자와 그 자녀들의 장학사업을 위해 쓰인 돈이었으며 2200만 원 정도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공동주최한 토론회 비용으로 쓰인 돈이었습니다. 조선일보가 기사 사진자료를 통해 친문, 좌파단체라고 지목한 ‘슬로워크’, ‘디자인나무’, ‘리스펙’등의 사회적 기업들은 단순히 재단의 홈페이지나 비품 등의 제작을 맡으면서 대금을 지급받은 것이었습니다.
한편, 조선일보는 이런 내용으로 <사설/국정 곳곳에서 먹잇감 찾아 악착같이 이익 챙기는 좌파들>(10/15)까지 내놨습니다. 사설에서는 공공상생연대기금을 포함한 여러 단체를 “입만 열면 정의를 말하며 약자 편인 척하는 사람들이 국정 곳곳에 빨대를 꽂고 있다”며 비난했습니다. 이미 기사에 대한 반박과 추가 취재는 14일에 이뤄졌을 텐데도, 아랑곳 않고 오보를 근거로 사설까지 낸 것입니다.
이 기사는 자유한국당 윤한홍·홍철호 의원실에서 낸 국정감사 보도자료와 의원실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 쓴 것에 불과하지만 조선일보는 ‘~으로 나타났다’는 단정적인 표현까지 써서 보도했습니다. 전형적인 ‘받아쓰기 보도’입니다.
언중위 가겠다는 한겨레에는 정정보도·연대기금에는 왜곡보도 얹어준 조선일보
이렇게 법적 조치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조선일보는 16일 정정보도문을 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문에서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한겨레신문 장학사업’에 2억3000만원을 썼다는 내용은 지난해 12월 공공상생연대기금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 2200여만원을 지출했다는 내용으로 바로잡습니다”라며 한겨레의 반박만을 반영했습니다. 정정보도문의 지면 배치는 더욱 가관입니다.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문 바로 옆에 오보를 낸 똑같은 기자의 기사로 <공공상생연대기금, 대학 동아리 10곳에 100만~500만원 뿌려>(10/16, 원선우 기자)를 냈습니다. 오보를 인정하면서도 기사 논조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투입니다. 이 기사는 또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받아쓰기 하여 “‘공공기관 성과급’ 505억원을 환수해 세워진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해 고교생·대학생·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1인당 200만~250만원가량의 ‘장학금’을 지급한 것으로 15일 나타났다”며, “야당에선 “총·대선을 앞두고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1600억원짜리 ‘매표 기구’를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고 비판했습니다.
△ 정정보도문 옆에 또다시 연대기금의 장학사업을 문제삼는 조선일보 기사(10/16)
공공상생연대기금 홈페이지에 있는 공지사항들을 보면, 대학교 동아리 지원 사업은 올해 3월부터 공개적인 홍보까지 이뤄졌는데도 조선일보는 마치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감춰졌던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대체 공공재단이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대학 동아리 지원사업을 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 어법으로 말하면 기업 장학금은 ‘청년 세대 사이에 친기업 세력을 형성하려는 의도’고, 국회의원 가족들이 운영하는 사학재단에서 장학금을 주면 ‘매표행위’가 됩니다. 게다가 최근 노동조합들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은 노동조합이 좋은 일 하는 꼴을 못 보나
이후로도 조선일보는 역시 같은 기자, 같은 형식의 기사로 <국세청 공공상생연대기금 기부금 내역 뭉뚱그려 신고…법인세법 위반>(10/18, 원선우 기자), <작년 누적부채 114조원 한전 공공상생기금 167억원 출연>(10/22, 원선우 기자)등의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18일 보도는 공공상생연대기금 측이 제출한 지출내역이 운영비와 사업비를 구별하지 않고 작성되어 있어 규정과 맞지 않다는 것이고, 22일 보도는 한국전력이 공공상생연대기금에 출연한 것을 문제삼는 보도입니다. 이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0월 18일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밝혀지지 않은 많은 좌파 시민단체들에게 이것을 사실상 사용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이를 받아쓰고 있는 조선일보의 기사들은 전후사정이 상당부분 생략되어 있습니다. 우선, 공공상생연대기금을 조성한 성과급 1600억원이 ‘환수’ 대상인지부터 논란이었습니다. 이 성과급은 애초 박근혜 정부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따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조항 위반 소지를 희석시키고 조기도입 경쟁 유발을 위해 무리하게 지급한 성과급으로, 명목이야 어쨌든 이미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써 지급된 돈이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 <성과연봉제 사실상 폐지…1600억 인센티브는 토해내야 해 논란 예상>(2017/6/16), YTN 기사 <성과연봉제 폐지…‘1,600억 성과급’ 반납해야>(2017/6/17)등등 언론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성과급 환수 방침 자체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의 주장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공운위는 환수 조건으로 ‘노사합의’를 들었습니다. 반납을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전임 박근혜 정부 내내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면서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면 이미 지급받은 성과급을 반납하겠다’고 주장해 온 노동조합 측이 기금 설립을 제안하여 만들어진 것이 ‘공공상생연대기금’입니다.
문제는, 모든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소속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조선일보 스스로의 기사에도 나오듯 “근로자에게 개별적인 동의를 받지 않는 이상 급여를 임의 처분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이것이 환수 대상 성과급이 1600억인데 공공상생연대기금 규모는 505억원이고, “성과급 반납을 주도하는 노조에 대한 공공기관 직원들의 불만”이 있는 이유입니다. 한국경제의 경우에는 노조가 성과급 반납을 약속했는데 회수가 더디다며 <성과급 반환은 못한다는 ‘철밥통’ 공기업 노조>(2018/2/23, 심은지 기자)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성과급 반납을 안해도 ‘철밥통’이라고 비난을 받고, 성과급을 반납해서 장학사업에 써도 ‘매표기관’이라고 비난받는 공공부문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사실상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재단 출연금은 세금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주도해서 모은 공공부문 노동자, 특히 노조 소속원들의 돈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사회에 노조 인사가 많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를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한다고 문제삼고, 심지어 이 재단의 출연금이 ‘관제 모금’, ‘촛불 청구서’라고까지 하는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의 논리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를 샀다고 지적하는 수준의 황당한 논리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10/14~22 조선일보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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