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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면 배신, 놓치면 한” 단일화 목매는 언론대선을 30여 일 앞두고 ‘단일화’ 이슈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단일화 당사자로 지목된 국민의힘, 국민의당 캠프에서도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죠. 주요 당사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월 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단일화 배제 안 한다”고 언급한 데다 “거론한 적도 없고 향후 계획 논의한 바도 없다”던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이 2월 8일 입장을 바꿔 단일화에 ‘열려 있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단일화’ 이슈에 적극적인 건 정치권보다 언론입니다. 일부 언론은 단일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만 적극 보도하거나, 두 후보 정책이 비슷하다며 ‘단일화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기사를 실으며 단일화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선거 당사자인 양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추진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단일화는 의무” “안하면 배신” 엄포
2월 첫 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언론은 단일화 촉구 목소리에 힘을 싣는 것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인데도 ‘시동을 거는’ 듯한 보도를 내놨습니다. 동아일보 <이기홍 칼럼/단일화 막차 놓쳐 국민 배신할 건가>(2월 4일 이기홍 대기자)는 “(단일화에 대한 여권의 절박성과 달리) 국민의힘엔 그런 절박성이 없다”며 야권의 단일화 의지 부족을 질타하고 “단일화는 의무이며 당위”라고 했으며, 조선일보 <야권, 연대 없이 이길 수 있나…1987·2017년에 답이 있다>(2월 3일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도 “야권이 연대하지 않을 경우 승부는 안갯속”이라며 “단일화 또는 공동 정부 구성 등 논의를 빨리 끝내”라고 촉구했습니다.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주요 인사들이 단일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자 이를 대서특필하며 ‘정치권이 단일화 논의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 <윤측 원희룡 “단일화, 때가 됐다”…안측 최진석 “정치는 생물”>(2월 7일 김민서 기자)은 원희룡 국민의힘 정책본부장의 “단일화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발언을 제목에 썼고, 최진석 국민의당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이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한 데 대해 “단일화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됐다”며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특히 이날 조선일보는 3면 전체를 단일화 관련 기사로 채웠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안 후보 측은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했죠.
△ 대선 30일을 앞둔 2월 7일, 3면에서 단일화 필요성 발언을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은 뒤 단일화 관련 보도로 지면을 가득 채운 조선일보
같은 날 한국일보도 1면 머리기사로 윤 후보 인터뷰 기사 <윤석열 “안철수와 단일화 배제 안 한다”>(2월 7일 김현빈‧손영하 기자)를 실었습니다. 본문엔 청와대 이전, 무속 논란과 아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국제‧대북 관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대장동 사건, 공약‧정책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보도됐는데요. 제목엔 단일화를 강조해 주요 키워드로 부각했습니다.
언론, ‘단일화’ 군불도 때고 바람도 불어넣고
방송 저녁종합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채널A <윤석열, 왜 단일화 미적대나?>(2월 7일 노은지 기자)에서 동정민 앵커는 “단일화하면 이긴다는 여론조사가 많은데, 윤석열 후보는 왜 단일화 미적거리는 겁니까?”라고 질문했는데요. 윤 후보가 단일화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미적거리는 것’이라고 규정한 발언으로, 단일화를 둘러싼 야권의 유불리 분석을 너머 단일화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주관적인 전제가 깔린 질문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단일화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주요 이슈로 부각하거나 야권의 단일화 의지 부족을 질타하다가 야권에서 단일화 관련 언급이 나오면 제목으로 강조해 더 확산시키는 흐름을 보입니다. 언론이 단일화에 군불도 때고 바람도 불어넣어 키운 것이죠. 단일화가 대선 주요 변수로 꼽히는 만큼 관련 보도가 실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거리를 두거나 완강히 부인하는 데도 언론이 단일화를 당연시 하거나 부추기는 행태는 특정 여론만 대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사실상 선거운동과 다름없는 영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 단일화 관련 기사 제목. 위부터 조선일보(2/3), 한국경제(2/4), 동아일보(2/4), 조선일보(2/5), 중앙일보(2/7), 동아일보(2/8)
안철수 후보 정책토론회, ‘단일화’ 보도 일색
2월 8일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안철수 후보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100분간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단일화뿐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부동산 정책, 국민연금 개혁안, 젠더 이슈, 이명박 대통령 사면 의향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안 후보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단일화에만 ‘올인’ 했습니다. 토론회 다음날 신문 지면은 모두 ‘단일화’를 제목으로 내걸었고, 이날 토론회에서 안 후보가 언급한 정책을 보도한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토론회 다음날인 9일 조선일보는 안철수 후보 관훈토론회 내용을 주요하게 다룬 기사는 싣지 않으면서 <야 단일화 교착에…시민사회 “국민의 명령” 집단성명>(2월 9일 김승재 기자)를 통해 안 후보가 단일화를 언급한 대목만 인용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시민사회 인사들은 9~10일·안 후보의 ‘연합 정치’와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잇달아 내면서 압박에 나서기로 했다”며 안 후보가 관훈토론회에서 “직접적으로 제가 어떤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 발언만 전했습니다.
매일경제 <윤-안 단일화 눈치작전 시작…이번 주말이 1차 분수령>(2월 9일 박인혜‧박윤균 기자) 역시 국민의힘 내 단일화 촉구 목소리를 전하면서 안 후보 관훈토론회 발언을 짧게 언급했는데요. “당선이 목표이지 완주가 목표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전하면서 “어떻게 보면 안 후보도 단일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부분”이란 기자 분석을 덧붙였습니다. 단일화에 대한 질문이 재차 나오자 안 후보가 단일화(완주)에 선을 그은 발언인데도 단일화와 연결 지은 겁니다.
△ 2월 8일 열린 안철수 후보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를 다룬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기사 제목(2/9)
관훈토론회 내용을 전하는 보도 역시 단일화 관련 발언으로만 채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중앙일보 <안철수 “후보간 담판으로 단일화? 지지 못 받을 것”>(2월 9일 최민지 기자), 동아일보 <안철수 “단일화 제안 받은적 없어…2012년 실수 반복 안할 것”>(2월 9일 이윤태‧윤다빈 기자), 한국경제 <안철수 “단일화 고민 안해, 끝까지 간다”>(2월 9일 이동훈 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일화 관련 내용만 보도했습니다. 한겨레 <안철수 “닥치고 정권교체가 목적 아니다” 거듭 완주 의지>(2월 9일 오연서 기자)의 경우 온라인판 기사엔 방역 체제나 부동산 정책 등을 언급했지만 지면엔 해당 부분을 싣지 않았습니다.
매일경제 “공약 비슷하니 ‘단일화 호재’”?
한편 안 후보가 관훈토론회에서 단일화 여부를 거듭 부인한 다음날 매일경제 <닮은꼴 윤·안 공약…단일화 추진때 ‘날개’될 듯>(2월 9일 박윤균‧김보담 기자)은 두 후보의 부동산, 정치개혁 등 공약을 비교하며 “‘닮은꼴’ 정책공약이 야권후보 단일화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2월 3일 TV토론에서 드러난 것처럼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사드 추가 배치 등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책이 있을 뿐 아니라 단순히 몇몇 정책 유사성만으로 ‘호재’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한 해석이자 단일화 부추기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정책 유사성을 들어 ‘단일화 호재’라고 주장한 매일경제(2/9)
단일화 모델 제안에 ‘안철수 책임총리’ 훈수까지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이렇게 단일화하라’며 방안까지 내놓은 언론도 있습니다.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윤일화’든 ‘안일화’든 단일화 놓치면 한 될 것>(2월 5일 강천석 고문)은 “후보 단일화는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어떤 조건으로 흡수하느냐를 결정하는 1997년 김대중·김종필 유형과, 누가 후보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유형이 있다”며 단일화 유형을 제시했습니다. 국민의당은 단일화 여부를 강하게 부인하고, 국민의힘도 단일화에 거리를 두며 정치권에선 단일화가 언급조차 되지 않던 때인데 조선일보는 단일화 방식까지 주문한 겁니다.
이후 조선일보 <윤 “단일화 내게 맡겨달라”…안 “공개발언 진정성 없다”>(2월 8일 김동하‧김승재 기자)는 “국민의힘 안팎에선 ‘일대일 담판’을 통해 연합한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모델’ 등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시나리오를 거론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며 3일 전 칼럼에서 직접 제안한 내용을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적었는데요. 언론이 단일화 방안까지 훈수 두며 마치 특정 정당의 캠프처럼 단일화 공론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단일화의 세부 청사진까지 제안한 칼럼도 있습니다. 동아일보 <박제균 칼럼/안철수 책임총리론>(2월 7일 박제균 논설주간)은 “먼저 손 내밀 쪽은 윤석열” 후보라며, “안 후보의 ‘철수 트라우마’를 해소할 카드가 필요”하고 “그 카드엔 역시 ‘안철수 책임총리’만 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뻔히 보이는 정권교체의 길을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다가 정권 연장의 문을 열어준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특정 후보로의 단일화를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 윤석열 후보에게 ‘안철수 책임총리’를 제안한 동아일보 칼럼(2/7)
실제 같은 날 김영환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은 윤 후보를 향해 안 후보에게 ‘책임총리’를 약속하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언론이 제안한 단일화 방식을 며칠 뒤 당이 실제 논의하거나 당 관계자가 제안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 몸’처럼 움직이는 듯한 언론과 특정 정당의 이런 모습은 유권자들의 신뢰만 잃을 것입니다.
후보지지 영향 1위 ‘정책 및 공약’, 누굴 위한 단일화 ‘올인’인가
한겨레가 여론조사업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2월 3~4일 조사한 결과(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클릭 시 이동)에 따르면, 남은 기간 대선 후보 지지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정책 및 공약 35.8%, TV토론 결과 22.5%, 후보 본인 및 가족 논란 13.2%, 후보 단일화 9.4%, 코로나19 확산 상황 4.3% 등으로 나타났는데요. 단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보다 정책 및 공약 또는 후보 논란과 관련한 검증 보도를 더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단일화는 ‘권력 나눠먹기’에 그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울신문 <사설/윤·안 단일화, 정책·비전 빨아들이는 블랙홀 안 돼야>(2월 9일)는 “윤·안 두 후보가 내세우는 국정 비전과 정책을 공유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정 청사진 제시 없이 대선 승리만을 노린, 정치공학적 단일화 협상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언론이 정치권의 ‘나눠먹기’를 비판하기는커녕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은 얼마 남지 않은 선거기간 더욱 적극적으로 유권자의 관심사를 살피고 유권자 선택에 도움 되는 보도를 내놔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유권자가 아닌 정치권 입만 바라보며 기사를 쓰고, 정치셈법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2월 3일~2022년 2월 9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 2022년 2월 3일~2022년 2월 7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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