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불법촬영 피해자 ‘단독’ 보도 자랑하는 채널A, 성범죄 ‘공범’ 언론이다
등록 2019.03.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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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가 방송인 정준영의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유포 사실을 보도하며 피해자인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단독’에 집착하며 성범죄 사건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전하는 사실상 ‘공범’ 수준의 보도를 방송에서 버젓이 내놓은 것이다.

 

채널A는 지난 12일 저녁종합뉴스인 뉴스A <단독/정준영의 왜곡된 성 인식 논란>(3/12 박건영 기자,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원제목 일부 삭제 *3월 13일 오후 4시 50분 현재 채널A 기사 삭제)에서 정준영이 자행한 범죄의 피해자를 유추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았다. 더구나 이 보도는 ‘단독’ 타이틀을 앞세웠고, 당일 톱 보도였다. 보도는 제목과 내용에서 일부 피해자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방송 직후 해당 보도가 인터넷 포털에 게재되고 누리꾼과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채널A는 제목을 수정했지만 여기에도 피해자의 직업군을 명시하고 있어 사실상 수정의 의미가 없다.

게다가 채널A의 자매사인 동아일보는 채널A와 거의 똑같은 보도 <단독/“정준영 몰카 7~8>(3/13 조동주, 김은지, 김정훈 기자,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원제목 일부 삭제)를 내놨다. ‘단독’을 달고 피해자의 직업군을 제목과 보도 안에 그대로 담아 내보낸 이 기사는 새벽 3시에 처음 게재하고 오전 9시에 수정했는데, 제목은 여전히 심각한 그대로다.

이런 보도의 문제는 인터넷과 다른 언론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채널A 보도 이후 연예매체를 비롯한 언론들은 해당 문제 보도를 ‘받아쓰기’ 하고 있다. 이런 보도들은 이른바 ‘지라시’로 불리는 정보지 속 근거 없는 내용들과 함께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 확산되며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3월 13일)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선 이런 보도와 인터넷 여론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우려한다면서 피해 여성으로 추측되는 이들을 사진과 함께 실명으로 보도하는 작태를 보였다.

이는 아이돌 그룹 빅뱅 출신 승리의 성매매 알선 혐의와 정준영의 불법촬영·유포 범죄 사실을 처음 보도한 SBS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이다. SBS는 지난 12일 저녁종합뉴스인 8뉴스에서 “확인되지 않고, 근거 없는 내용을 올리고 퍼뜨리는 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분명한 범죄”라며 “저희가 이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추가 피해를 막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일부 남성 연예인의 일탈 행동이 아니다. 여성을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지 않고 성적 대상화하며 권력의 부산물처럼 취급하는 한국 사회의 잘못된 젠더 문화와 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또한 오랫동안 소문만 무성했을 뿐, 제대로 수사조차 되지 못한 채 사실상 은폐되고 있던 사안이다.

언론이 이런 사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집중 조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무엇을 위한 보도인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한다. 즉, 성폭력 문화를 고발하고 우리 사회에 성 평등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하는 보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위해 기자가 취재와 기사작성 과정에서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분명히 학습하고 철저히 지켜야 한다.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만든 <성폭력, 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은 ①잘못된 통념 벗어나기 ②피해자 보호 우선하기 ③선정적, 자극적 보도 지양하기 ④신중하게 보도하기 ⑤성폭력 예방 및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채널A와 동아일보, TV조선 등의 보도는 이 사안 모두를 위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명제를 완전히 망각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기본은 사라진 채, 오로지 상업적 재미나 볼 생각으로 여성 인권을 난도질하는 보도를 내놓는다면, 그것은 언론보도가 아니라 범죄에 가깝다. 더 이상 이런 보도에 대해서 ‘언론으로 인한 2차 피해’라는 표현을 쓰기도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우리 언론사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바로 2012년 고종석 사건 당시, 우리 언론사들의 과열경쟁 속에서 언론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2차 가해를 했다. 당시 언론은 어린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강력한 처벌 여론에 편승하여 피해자의 인권을 간과한 기사를 쏟아냈다. 이런 현상은 진보‧보수 언론을 가리지 않고 비슷하게 드러난 현상이었다. 보도 이후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빠르게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피해자 가족이 언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설령 공개된 사항들이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관심이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인격적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단독’을 앞세우며 피해자 보호와 선정적·자극적 보도 지양 등의 원칙을 내던진 채널A 보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방송심의 민원을 제출할 계획이다. 방통심의위의 신속하고 엄중한 심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처리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모든 언론사가 채널A와 같은 보도를 어뷰징하는 행태를 멈추는 것이다. 언론은 언제까지 가해자의 시선에서 ‘공범’ 수준의 보도를 계속할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기본 이하의 보도를 보며 관음증적 호기심을 채워나가야 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모든 언론이 <성폭력, 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의 ‘피해자 보호 우선하기’ 부분을 함께 읽고 실천하길 간곡히 요청한다.

 

○ 언론은 경쟁적인 취재나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 언론은 피해자의 권리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해자 보호에 적합한 보도방식을 고민하여야 한다.

○ 언론은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이름, 나이, 주소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보도 내용 중 근무지, 경력, 가해자와의 관계, 주거 지역 등 주변정보들의 조합을 통해서도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여 보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 언론은 피해자의 피해 상태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함에 있어, 피해자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 성폭력은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으로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임을 감안하여,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사실 확인 등 형식적인 객관주의를 경계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로 보도하여야 한다.

○ 언론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라고 해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3월 1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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